TOP

NEWS

교정사목소식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영우 신부 '예수도 사형수였다'

교육홍보 2009-10-14 조회  2491

[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기사 내용입니다.]

[ ▲ 사진 설명 : 이영우 신부는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꾸리고 있다.]

이영우 신부 '예수도 사형수였다'
[인터뷰] 이영우 신부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지난 12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집행이 없었지만 참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집행이나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형집행이나 사형제도 자체가 강력범죄를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2009 세계사형폐지의 날 선언문’을 발표했다.

또한 지난 10월 10일 서울 명동 중앙시네마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에서 김형태 변호사는 '사형제 폐지가 세계적 추세이며 한국 정부가 더는 사형 집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또 '우리는 사형제도가 당연히 위헌이라고 보고 있고, 유럽연합과 유럽평의회에서 한국 헌법재판소에 좋은 의견을 보내주었다'며 올해 안에 헌법재판소의 과반수 위헌 판결을 기대한다고 희망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고 있으며, 주교회의도 호응하고 있다. 이번에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이영우 신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상봉: 한국가톨릭교회는 전체적으로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분위기인데, 아마도 생명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데 근거를 제공해 주는 교회문헌이나 성경, 신학적 입장 등을 듣고 싶네요.

이영우 신부: 글쎄요. 먼저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행한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405항에 '공적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징후가 커지는 것을 희망의 징표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형제도를 반대한다고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를테면 '불의한 공격자에게서 인간생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법이 사형뿐이라면 .. 사형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이 공동선에 더 잘 부합하고, 여론이 점점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사형제도 폐지나 집행중지를 요구하는 규정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도덕의식의 증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아마도 교회 자신이 역사적으로 숱한 사형을 선고했던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이미 매년 11월 30일을 사형 반대의 날로 선포하고, '시티 오브 라이트'(City of Light) 운동을 벌여, 이 날이 되면 사형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콜롯세움에 불을 밝혔습니다.

하느님만이 생명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계시다

우리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은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도 교회가 금지하고 있는 것인데, 사람을 인위적으로 살해하는 사형제도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느님만이 생명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님도 사형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혀 와서 죽을 고비에 처한 여인을 죽음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변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은 아무리 죄 많은 백성이라도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씩 용서하라고 하지 않던가요.

범죄자를 벌 주는 것은 제거가 목적이 아니라 참회가 목적입니다. 교회는 죄인이 자신이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게 사명입니다. 실제로 예수야말로 사형제도의 최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그분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보복의 악순환을 멈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상봉: 그러나 아시다시피 사회적으로 비열하고 악랄한 범죄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다시 사형제도를 옹호하게 됩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파렴치범을 용서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이영우 신부: 그건 피해자의 감정 때문일 것입니다. 사형수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피해자의 마음을 치유하려면 법집행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은 범죄로 인한 상처도 크지만, 조사과정에서 참고인 등으로 경찰에 불러다니면서 상처를 입거나, 이웃과 언론을 통해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에 빠지면서 아예 원망스런 세상과 등지고 지내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를 죽일 놈으로 생각하게 되죠.

그렇지만 가해자를 원망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와 증오심으로 말도 못 하고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진짜 피해자를 도와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을 돌봐주는 것입니다. 국가는 사형을 집행하고 나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유영철 사건 이후에 긴급구조 형식으로 검찰청 내에 '범죄피해자 지원센터'가 만들어져 생계를 일부 지원하거나 법적 문제를 도와주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한편 시민단체에서는 피해자들의 자조(自助)모임을 활성화시키고, 주변의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피해자들이 맘껏 울면서 분노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현재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도 자조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빛의 사람들'이라고 붙인 이 건물 옆에 별관을 지어 그런 활동을 늘이려고 합니다.

범죄의 원인, 개인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에서 먼저 찾아야

우리는 흔히 범죄 재발생 때문에도 사형제도를 존치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별난 '이놈들'을 제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범죄는 흔히 사회시스템 문제에서 발생하기 때문이죠. 범법자들이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하면 아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희망이 안 보이기에 그들 역시 상처를 다시 받고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불특정 다수에게 되갚아주려고 합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멈추게 할 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전에 독일대사관 직원을 만난 적이 있는데, 독일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져도, 먼저 그 사회적 원인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가 왜 총을 갖게 되었는지, 왜 유치원 등에서 총을 난사했는지, 그 사회적 배경과 원인을 먼저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문제를 그 가해자 개인에게 묻지 않고, 어떤 사회문제나 시스템이 그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었는지 성찰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에서부터 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연일 개인사를 파헤치며 들쑤셔 놓을 뿐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범죄를 줄이려면 형벌을 강화하고 사형제도를 존치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먼저 취약계층과 출소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기쁨과 희망은행'을 열어 출소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우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죠. 그들은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액이지만 돈을 대출받아 노점도 하고 음식점도 냅니다.

한상봉: 그렇다면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이영우 신부: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죠. 현재 위원회에서는 살해피해자 자조모임을 하고 있는데, 한달에 한번 씩 모여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통 7-8명 정도 모이는데,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가지려면 종교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그런데 피해자들의 종교가 다르면 좀 어려움이 들곤 합니다. 각 종파마다 그런 자조모임을 운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예식을 행하다 보면 위로도 받고, 내 힘으로 극복하기 어렵고, 내 생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을 신앙 안에서 치유하게 됩니다. 아무도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이 죽은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연도를 바치다 보면 새로운 활로가 열리게 되는 경우가 많죠.

이영우 신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레니 쿠싱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레니 쿠싱은 1988년 집 앞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 미국인이다. 쿠싱 씨는 '살해당한 가족의 죽음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국 무덤에 있는 사람과 뒤에 남겨진 사람을 다 죽게 만든다'며 범인을 용서한 뒤 지금은 사형제 반대운동을 하는 국제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nahnews.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