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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데스크칼럼] 용서

교육홍보 2010-06-24 조회  2012

[가톨릭신문 6월 27일(일)[제2703호, 26면]자 기사내용입니다.]

[데스크칼럼] 용서 / 전대섭 편집국장

최근 발생한 A양(8) 성폭행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방과 후 수업을 받으러 가던 A양은 학교운동장에서 납치당한 뒤 성폭행 당했다. 아이는 범인이 자는 틈을 타 도망나왔다고 했다.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고통, 평생을 안고 살아갈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솟구치는 울분을 참을 수가 없다. A양의 아버지는 사건 발생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한테도 못할 짓을…그런 놈은 죽어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뿐인가. 조두순에게 무참하게 성폭행 당한 나영이 사건의 충격도 여전하다. 어떻게 그 어린 것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치가 떨린다. 부모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중생을 납치, 성폭행하고 죽이기까지 한 김길태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딸 아이의 시신 앞에서 부모는 혼절했다.

사람으로서 겪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먼저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 무엇으로 아픔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자식을 둔 부모로서, 지켜주지 못하고 함께해주지 못함이 미안하고 죄스럽다. 아이와 가족들의 고통과 상처가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그저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용서’라는 영화가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족의 삶을 다룬 이 영화는 2년에 걸쳐 유족들의 분노, 용서 과정의 고통, 희망의 발견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고정원 씨는 유영철에게 어머니와 아내, 4대 독자인 아들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는 원수에게 용서를 베풀었다. 두 딸은 아버지의 용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로부터 멀어졌다. 그래도 그는 용서를 결심하고서야 다시 살아갈 의지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의 살인피해 유가족을 위한 ‘희망캠프’에 참여한 뒤 “당신을 용서한다”는 편지를 유영철에게 보내고, 직접 찾아가 용서의 뜻을 전했다.

6년을 사귀고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외동딸이 살해당한 그 날로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배덕환 김기은 씨 부부. 남자 친구는 딸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해 목숨을 버렸다. 이 부부는 매일 기도한다. 용서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사랑하는 가족을 하루아침에 살인자에게 잃고, 상실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유가족들의 심정을 우린 다 헤아릴 수 없다. ‘용서’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그러나 그만큼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용서를 신(神)과 가장 닮았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반응은 다양하다. 가해자를 사형시키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부 언론의 보도는 이런 감정을 부추긴다. 흉악범죄자는 응분의 벌을 받음이 마땅하다.

한편에선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한 인간을 인격체로서 제대로 길러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미성숙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 뿌리엔 만연한 물신풍조와 외모?학벌 지상주의, 극단적 이기심, 그 그늘에 가려진 몰인권과 부도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면에서 가해자는 우리 사회가 낳은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베푸는 온정이기 전에 피해자가 다시 살 수 있는 바탕이다. 용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사랑의 선물이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죽은 이가 되살아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병자가 치유되는것보다 이런 기적이 훨씬 더 아름답다.

전대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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