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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사형수' 정 프란치스코씨의 사순절

홍보부 2011-04-04 조회  2058

(사진설명 : ▲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구치소 마당 한편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쇠창살 너머의 예수님은 오늘도 죄인들을 회개의 자리로 부르신다.)

[평화신문 2011년 4월 3일 1111호 9면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회개] '사형수' 정 프란치스코씨의 사순절'

조금만 더 일찍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세상에선 '사형수', ○○구치소에선 법정 최고형을 받은 기결수라고 해서 '최고수'로 불리는 40대 후반 정 프란치스코씨는 며칠 전 접견실에서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김성은 신부와 면담을 했다.

 정씨는 좁은 독방에서 홀로 기도하며 묵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의 고백에는 사형수 신분으로 느끼는 사순절 의미, 삶과 신앙, 회개와 반성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김 신부와 정씨가 나눈 대화 내용을 정씨 동의를 얻어 소개한다.



-프란치스코 형제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구치소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사순시기'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순시기가 돌아오면 특별한 마음이 들죠?

 '사실 사형수에겐 1년 365일이 사순시기입니다. 죽음에 대한 묵상을 따로 하지 않아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죠. 사형 확정 후 처음 몇 년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가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인정하고 나니까 자연스레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에 동참하게 되더라고요. '주님, 저 같은 죄인을 위해서도 십자가 희생 제물이 되길 원하셨습니까? 이제 제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말씀해 주십시오'하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세례를 받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1996년 10월 사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당시 제 어깨 위에 얹힌 십자가 무게가 마치 큰 산 같았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선고를 받고 2개월 후 무작정 신부님께 세례를 달라고 졸랐어요. 신부님은 교리준비가 안 돼서 세례를 줄 수 없다고 하셨지만, 제 뜻이 하도 완강하니까 '외상'으로 허락해 주시더군요. 세례식 때 하느님께서 저를 얼마나 기다리셨고,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시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돌아온 탕자를 반겨주시는 아버지 모습 같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은혜롭고 행복한 날이었어요.'


 -세례를 받고나서 가장 먼저 청한 기도가 무엇이었어요?

 '저처럼 큰 죄를 지은 죄인은 감히 '용서해주십시오'하는 기도를 할 수가 없어요. 성전에서 바치던 세리의 기도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처럼 그저 엎드려 빌 뿐이죠. 죄에 대한 성찰을 통해 회개 단계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릴 수 있었어요.'


 -요즘도 과거 죄에 대해 묵상하나요?

 '그 날의 죄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하는 게 제 삶입니다. 저는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었어요. 조직 보스 지시로 폭력을 저질렀어요. 그러던 중 경찰 추적을 받게됐죠. 그런데 함께 일을 공모했던 동료가 위기를 느끼고 경찰에 자수를 했어요. 그의 배신에 격분한 나머지 동료와 그의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말았어요. 화를 누르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만거죠.'


 -예수님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사셨을텐데….

 '당연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그런 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어요. 살인죄만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크고 작은 죄에 빠져 사느니 확실한 삶의 전환점을 맞을 필요도 있으니까요. 썩은 부위는 과감하게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기쁨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마음에 품고 있는 성경구절이 뭐예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 입니다.'(2갈라 2,19-20)


 -교리신학원 통신과정을 이수하고 '구치소의 선교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형 확정 후 '외상' 세례를 받을 당시 죽을 때까지 열심히 교리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교리공부를 하면서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받아본 적 없는 100점짜리 시험지를 받고는 어찌나 신이 났던지.
 옆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을 땐 성경 말씀보다 제 신앙 고백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예수님 믿고 복음을 나누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한 일이고 그야말로 산 증인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교정 행형법이 바뀌면서 요즘은 모든 사형수가 독방생활을 해요. 일반 수용자들과 마주할 기회가 없어져 복음 나눔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예요.

 '얼마 전 접견장에서 누님들이 '사형수를 둔 가족은 똑같이 사형수 심정으로 살아'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피해자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가해자 가족들 역시 평생 죄인 심정으로 사는 걸 생각하면 제겐 또 다른 형벌입니다. 그럼에도 지난 17년간 항상 웃는 얼굴로 못난 동생을 찾아주는 누님들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부활대축일 맞이하시길 기도할게요.

 '2년 전 '집행자'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가 인터뷰에서 '사형수들이 죄를 짓고도 반성하는 기미 없이 너무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형수들이 살아 있다는 자체로도 불편을 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고 사는 문제야 이미 제 영역을 떠난 일이고, 다만 죽기 전에 완전한 회개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자기 몸에 예수님 죽음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결국 그 몸 안에서 예수님 생명도 지니게 된다고 했으니 예수님과의 관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예수님 십자가 희생 덕에 덤으로 사는 생명이니 가치있게 살려고 노력해야지요.'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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