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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세 가족 살해한 유영철 용서했던 고정원씨, 사재 털어 범죄 피해자·가해자 가족에 장학금

홍보부 2013-10-15 조회  2885

세 가족 살해한 유영철 용서했던 고정원 씨, 사재 털어 범죄 피해·가해자 가족에 장학금

발행일 : 2013-10-13 [제2865호, 21면]

 ▲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김성은 신부에게 범죄 피해자·가해자 가족 추모 장학기금을 전달하고 있는 고정원씨(왼쪽).
노인의 눈시울은 이내 붉어졌다.

“바보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비웃음도 많이 샀지요. 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꼭 1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손에 노모와 아내, 4대독자 등 온 가족을 잃고서도 그를 위한 탄원서를 내 세간을 놀라게 했던 고정원(루치아노·70)씨. 그가 또 자칭 ‘바보’같은 짓을 했다. 결코 녹록한 형편이 아님에도 사재를 털어 범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가해자 가족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마련해 전달한 것.

지난 2004년 세례를 받은 후, 새벽 4시면 일어나 하루도 빠짐없이 먼저 간 가족들을 위해 묵주기도 60단씩을 바치고 있다는 고씨는 자신의 하느님 체험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제게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오롯이 저를 일깨워주시는 주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주님이 제 곁에 안 계셨으면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월세방에 살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길 마다하지 않는 고씨는 지난 2009년 전립선암을 얻어 수술을 받고도 20일 만에 일본 초청강연 길에 오를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떨쳐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몸을 사리지 않았던 것. 지난 9일로 10주기를 맞은 그는 이미 한 각막과 장기 기증에 이어 신체조직까지 기증하기로 했다. 깨끗한 몸을 남기기 위해 술 담배를 끊은 것은 물론이다.

“주님이 저를 어떤 용도로 쓰시려고 이제껏 살려놓으셨는지 늘 묵상합니다. 많은 위로를 받아서, 이제 제가 받은 위로를 나누고 싶습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나눔의 영토를 넓혀가다 보면 언젠가 가족들을 기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고씨는 이미 하느님나라를 살고 있는 듯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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