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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쁨과희망은행, 제 인생의 참 좋은 인연입니다”

홍보부 2015-01-16 조회  1085

교회
“기쁨과희망은행, 제 인생의 참 좋은 인연입니다”첫 대출 완납자 박철종 씨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승인 2015.01.15  17:56:17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기쁨과희망은행’ 첫 대출 완납자인 박철종 씨.


2009년 4월 창업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출을 받아 5년 만에 완납자 1호라는 이름을 달았다. 억울함과 절망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수감 시절, “1등 한번 해 보자”며 다시 덤벼들었던 삶이었다. 그는 대출을 받으며 입버릇처럼 했던 말, “1등 하겠습니다”를 정말로 지켜 냈다.


  
▲ 용인에 있는 식당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박철종 씨 부부. 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팔면서 지켜온 것은 "아끼면 망한다"는 소신이다. ⓒ정현진 기자


알리바이도 있었지만, 가족의 증언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수감된 몸으로 증거를 제출할 수 없었다. 여주 교도소에서 억울함을 못 이겨 반항을 일삼다가 독방에 갇힌 어느 날, 한 교도관이 찾아왔다.


12월의 추운 날, 자신을 붙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도하는 교도관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그가 두고 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렸지만 마음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읽던 성경을 덮고 가족에게 유서를 썼다. “모두 끝났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문득 오기가 생겼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1등, 최고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나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마음도 욕심이라며 구형량에 대한 분노도 내려놨다. 다만 진심을 알리고 싶어, 판사에게 탄원서를 썼다.


결심 공판이 있던 날, 판사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만 법적 판결을 피할 수 없다”며 7년 구형을 4년형으로 감형, 선고했다.


마음을 추스르며 주위를 둘러봤더니, 자신의 형량은 평균 이하였다. 그는 “사람 마음이란 게 얼마나 간사한지, 그것에서 희망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처음 수감됐을 때, 골칫덩어리였던 그는 변해갔다. 교도소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태어난 뒤로 가장 열심히 일했다. 1급수까지 가장 빨리 도달했고, 탈 수 있는 상은 모조리 도전해 타 냈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악조건 중에서도 경사라고 할까요?”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가석방이 된 지 한 달만에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자유는 닥친 현실 앞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내가 식당일, 학교 급식 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빚은 쌓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교도소 공장에서 고스란히 모았던 월급과 영치금 백만여 원을 한달 생활비로 아내에게 안기고는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감생활 중 썼던 일기장을 들여다보다가 언젠가 오려 뒀던 ‘기쁨과희망은행’ 광고를 발견했다.


혹시나 하며 찾은 본부에서 신청서를 쓰고 교육을 받았다. 만만치 않았지만, 수감 생활동안 도전과 성취가 무엇인지 맛본 그에게는 또 한번 1등을 할 기회로 다가왔다.


“제가 1등 할거에요” 황봉섭 본부장에게 약속처럼 던진 말대로 그는 매일 용인에서 서울 교육장까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대출 허가 소식을 듣을 날은, 그 직전 빚독촉 전화를 받았다. 막막함에 울고 있던 아내는 이번에는 기쁨과 안도감으로 울었다.


“막상 대출을 받고 보니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몰려왔어요. 어떻게 이 돈으로 꾸려갈까...고민이 깊었지만, 다만 무엇을 하든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가자고 결심했죠.”


없을 때는 크지만, 막상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2000만 원. 그는 간신히 어느 건물 지하에 식당 자리를 잡았다. 음식 솜씨가 좋은 아내를 믿고 중국 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을 열었다. 지하에서 식당을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그는 교도소 독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연 식당에 당시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가 방문해 격려했고, 황봉섭 본부장도 수시로 전화했다. 박철종 씨는 당시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가 황 본부장이 자신을 항상 ‘박 사장’으로 불러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런 작은 기억들이 쌓여 오늘의 인연이 됐다면서 그는, “그분에게 잘못하고 배신하면 지금껏 지은 죄값을 한꺼번에 치를 것 같다”고 고백했다.


밤낮 없이 일한 덕분에 2000만 원의 자본을 조금 늘릴 수 있었고, 현재 용인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열 수 있었다. 1억 8000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들었지만, 솔직함과 배짱으로 부딪혔다. 체인점 대표 역시 그처럼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람이었기에 믿어줬고, 부족한 돈은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4년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도 찾았고 가게를 2배로 늘렸다. ‘기쁨과희망은행’ 대출금도 착실히 갚아 나갔다. 장사로 정신없던 중에 마지막 몇 개월을 놓쳤지만, 그는 호언장담했던 1등을 했다.


“기쁨과희망은행‘은 가장 힘들 때 생각나는 곳이고, 제게는 정말 좋은 인연입니다”


박철종 씨는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자기 이름을 건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100개의 매장을 갖는 꿈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은 열심히 메뉴도 개발하고 서비스에도 신경을 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끼면 망한다”는 진리다.


그는 ‘기쁨과희망은행’을 무사히 졸업한 선배로서 당부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출소자들은 대체로 시간과의 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그는 “대출을 받은 이들이 시간에 자신을 맡기고 천천히 성실하게 갈 수 있도록, 인내심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기쁨과희망은행을 거쳐 재기에 성공한 이들 중에 국회의원이 나올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박철종 씨는 더 많은 이들이 기쁨과희망은행과 좋은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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