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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끌려가고 쫓겨나도 한국을 사랑한 벽안의 신부 인혁당 사건 조작을 폭로하고 시대 약자 위한 삶을 산 제임스 시노트 신부 이야기

홍보부 2016-01-13 조회  1196

문화출판
끌려가고 쫓겨나도 한국을 사랑한 벽안의 신부
인혁당 사건 조작을 폭로하고 시대 약자 위한 삶을 산 제임스 시노트 신부 이야기
2016. 01. 01발행 [1346호]


인혁당 사건 조작을 폭로하고 시대 약자 위한 삶을 산 제임스 시노트 신부 이야기


▲ 제임스 시노트 평전





제임스 시노트 평전

김종철 지음/바오로딸/1만 6000원




아픈 한국을 사랑한 신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섬마을 사제에서 거리의 투사로 나선 제임스 시노트(한국명 진필세, 메리놀외방전교회, 1929~2014) 신부 활동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시노트 신부는 1960년 미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한국 선교사로 파견됐다. 인천교구에서 영종도본당 주임 사제로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며 행복하게 사목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유신헌법이 공포되고 정치적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특별히 귀 기울이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시위하던 대학생들이 고문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실상을 접하게 되면서 그는 달라졌다. 특히 ‘인혁당’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데 앞장서며 가장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눈과 귀, 입이 돼줬다. 

시노트 신부는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다. 긴급조치로 구속된 양심수들, 인혁당과 민청학련 인사들, 그 가족들과 함께하며 유신독재 정권의 비인간적 행태를 고발했다. 결국, 그는 1975년 강제추방 당했다. 당시 시노트 신부는 “고통받는 한국인들과 더이상 함께 고통받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 1975년 4월 9일 사형장 앞에서 항의 중 경찰에게 끌려가는 시노트 신부.





“무엇보다 내가 괴로워하는 것은 오늘 내가 떠나게 됨으로써 앞으로 여러분의 고난과 시련을 같이 나눌 수 없게 되고 여러분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게 되고 비록 내게 죽음이 직면한다손 치더라도 여러분을 위해서 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점이 가장 마음 아픕니다”(229쪽, ‘사랑하는 한국을 떠나면서’ 성명서 중에서).

▲ 2010년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과 함께 활짝 웃고있는 시노트 신부.



한국에서 추방된 시노트 신부는 미국에서도 한국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미국 워싱턴에 머물면서 거의 날마다 한국에서 일어난 ‘인혁당 사법살인’의 진상, 언론인 대량 해직의 원인과 과정을 미국 의회와 언론 매체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후 칠레 선교 사제를 거쳐 한국을 오가던 시노트 신부는 2002년 메리놀회 한국지부 상주 사제로 머물면서, 2014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인혁당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책은 시노트 신부를 잊지 못하는 이들의 추모글도 담았다. 함세웅(서울대교구) 신부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고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참된 제자임을 늘 확인했다”며 시노트 신부를 기렸고, 이해동 목사는 “시노트 신부님의 평생은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아픔을 함께 짊어진 삶이었다”고 추모했다. 이 밖에도 책은 작가이자, 시인, 화가였던 시노트 신부의 작품도 소개했다.

평전을 쓴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서 시노트 신부님이 ‘살아 계신 성인’이었음을 새삼 느꼈다”면서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분과 함께 웃고 울고 사랑하던 ‘아픈 한국인들’에게는 ‘영원한 성인’으로 살아계실 것이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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