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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 기독교]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

교육홍보 2008-12-16 조회  2361

週刊 기독교[www.cnews.or.kr] 08.12.14. 1746호
커버스토리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지난해 12월 23일 방송한 성탄특집 SBS 스페셜을 새롭게 영화로 제작해 극장에서 상영했다. 개봉관 2개에 2주 상영, 관객 수를 집계하기도 부끄러운 흥행 실적이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는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당신은 용서할 마음을 가졌는가?”라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IMF 때보다 어렵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자산이 반 토막 나는 상황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알지 못할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용서’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을 때리는 것은 이러한 사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는 ‘불구대천지원수’,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갈 수 없는 원수를 용서한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2일 오전,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사무실 ‘빛의 사람들’을 방문해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한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영우 신부를 만났다. 그는 11년째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라는 성서의 말씀을 떠올리며 감옥에 갇힌 이들, 출소한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영화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는 어떤 내용이며,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사회교정사목위원회가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함께 울고 웃고 아픔을 나누고 치유해 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영상에 담았다. 강변 CGV에서 2주, 압구정 CGV에서 1주 상영했다. 상영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상업 영화가 아니라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홍보에도 한계가 있었다. 경제도 어려운 시기라 사람들은 더더욱 무거운 주제보다 오락성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좌석이 100석도 안 되는 규모로 상영했는데 영화 관계자들은 아주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라고 평했다.
기회가 되면 케이블을 통해 방영하고, DVD로 제작하여 교육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번 영화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정리해보는 기회도 되었다. 피해자 가족들의 경우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자신들의 아픔을 객관화 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보면서 울고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압구정 CGV에서 시사회를 마친 후 서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많이 편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가 언론에 보도되고 난 후 피해자 가족 중에 연락을 해온 경우가 더러 있었다. 만나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영화를 보고 상처를 드러낼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로서는 큰 보람이다.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라고 질문 형으로 제목을 붙였다. 이유가 있는가.
조욱희 감독은 과연 용서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한다. “죄를 안 짓고 사는 것만큼 힘든 것이 용서하며 사는 것”이라고 어느 신부님이 말했다. 상처의 농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큰 고통이 닥쳤는데 ‘내가 용서해야지’ 하고 단번에 용서하기는 어렵다. 용서를 하기까지는 눈물겨운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용서하는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상처를 무의식 깊이 간직하곤 이따금씩 꺼내 분노를 발산한다. 하나님 안에서 용서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꺼내 잠시 분노하고 마음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다시 꺼내 분노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삶의 많은 부분이 억눌린 채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얼마 전의 고시원 방화 사건처럼 ‘묻지마 범죄’가 늘어가면서 이런 피해자들 또한 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피해자 가족의 고통에 대해 사회와 교회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용서와 화해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면서 나 자신과의 화해, 이웃과의 화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유영철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다른 이들은 아직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혼자 용서해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영화에서 고정원 씨의 경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우선 딸들이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피해자 가족들로부터도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실 고정원 어르신도 가해자를 용서하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 성당에 가서 예비자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은 지 1주일 만에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죽더라도 용서를 하고 죽자.’는 마음이 생기더라고 했다. 범인을 만나고 난 후 서신을 교환하고 사형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다. 용서를 하고도 괴로움은 여전하지만 신구약성서를 필사하며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 용서를 할 수 있는 힘도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용서를 하고 마음에 평정을 얻기까지 또 어떤 노력이 있었는가.
지난해에 미국에서 진행된 ‘희망여행(journey of Hope)’에 다녀왔다. ‘희망 여행’은 ‘화해를 위한 살인 피해자 유가족 모임(MVFR)’이 주체가 되어 피해자 유가족과 사형수 가족, 사형에서 무죄로 석방된 이들이 2주 동안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감싸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사형제가 존속되고 있는 주를 돌면서 캠프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고, 차로 이동하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체험을 전한다. 이 여행을 통해 스피치(연설)가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 감정에 휩싸여 울분을 토하기도 하지만 차츰 사건을 객관화 시키게 되는 모습을 보았다.
2박 3일 동안 집단 상담을 가지면서 마음여행도 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 피해자는 피해를 당했을 때의 고통을 얘기하고 가해자는 용서를 청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그런 일을 시도하고 있다. 원한을 쌓아가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살기(殺氣)가 있는 것 같다. 분노와 살기가 쌓여 있다가 가장 약한 부분에서 ‘묻지마 범죄’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화해는 종교의 가장 큰 가치다. 가해자들은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용서 받음으로 인해 참회가 일어나고, 피해자는 용서를 함으로써 서로를 구원해 가는 것이다. 용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수님도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시키기 위해 돌아가셨다.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피해자 가족에 관심을 갖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는가.
거슬러 올라가보면 91년도에 여의도에서 김용재라는 청년이 차량을 질주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 사건이 있었다. 꼬마 한 명도 죽었는데 할머니가 키운 아이였다. 꼬마가 죽자 할머니는 며느리가 미웠다. 할머니는 신자였는데, 며느리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범인을 먼저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범인을 찾아갔다. 막상 만나 얘기를 해보니 여리고 불쌍한 청년이었다. 사형수가 된 다음에도 계속 면회를 가고 감형을 받을 수 있도록 구명활동을 했지만 결국 97년에 사형을 당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일이 있은 후 후원회를 결성해 함께 미사를 드리곤 한다. 사형수들은 교도소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한 번은 피해자 가정에 가보고 놀랐다. 창문을 밖에서 열 수 없도록 아예 못을 박아놓을 정도로 두려움과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다. 피해자 가족의 상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을 다 돌보고 계신다. 마음이 복잡할 것 같다.
사실 가해자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죄는 충분히 저주하고 미워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면서 생각해본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쪽이 평온했을까. 피해자 측이 평온했을 것이다. 가해자는 삶에 찌들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10년 후에는 어떨까. 가해자는 교도소 안에서 죗값을 치르고 종교인들에게 인간 대우를 받으면서 참회하고 세례까지 받으면서 얼굴이 평온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에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충격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원망과 미움, 증오 때문에 우울증에 빠져 죽기까지 한다. 유영철 사건의 피해자 가족 중 안재삼 씨의 경우도 한 예다. 큰형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후 둘째 형과 막내 남동생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자살해버려 늙은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살인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가족들은 너무 큰 고통이기 때문에 서로 간에도 얘기를 하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한다. 이런 슬픔과 고통이 대물림되면서 자녀들은 알 수 없는 집안 분위기에 휩싸여 성장하게 된다. 자신 안에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 10년 후 이들의 모습은 어떻겠는가.
가족이 살해당했을 때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이들은 2차 피해를 입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 마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한다. 그러다보니 어디에도 얘기할 수가 없게 된다. 이들의 아픔과,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분노를 치유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3년 전부터 피해자 가족의 자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올해는 더욱 용서가 필요한 해인 듯 싶다. 자고 나면 자산이 반 토막 나 있는 현실에서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용서는 남을 향한 측면도 있지만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성경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찾아 나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듯 부족한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이대로 살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게 되고,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되면 이웃의 가치도 존중하게 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겠는가.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 02)921―5093
www.catholic-correction.co.kr

이성숙 부장 hyangrim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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