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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책 읽는 사람들] 서울남부교도소 수용자들의 독서여정

홍보부 2014-04-08 조회  1676

[책 읽는 사람들] 서울 남부교도소 수용자들의 독서여정

“수용생활의 메마름 적셔준 한 권의 책”
서울사회교정사목위 후원으로
신심서적 읽기 시작한 수용자들
개인성화 노력에 새로운 물꼬 
책읽고 보내온 감동의 독후감
발행일 : 2014-01-01 [제2876호, 16면]

지난 섣달의 끄트머리, 신문사로 두툼한 봉투가 배달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가톨릭독서문화운동-신심서적33권읽기’ 담당자 앞으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교도소 수용자들이 손으로 쓴 독후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같이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한 줄 글귀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한 줄 글귀에 가슴을 치고, 한 줄 글귀에 미래를 그려보는 독서의 시간이 오롯이 묻어났습니다. 교도소 수용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줄 읽을거리 정도를 기대했다가 뜻밖에도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을 생각하며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는 이, 평소 즐겨하던 책 읽기의 기쁨을 이번 기회에 성경필사로까지 확대했다고 알려온 이, 무심히 지나쳐온 하느님의 부르심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 이도 있었습니다. 

남부교도소에서 전해진 독후감은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김성은 신부)가 지난 10월부터 시작한 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한 ‘신심서적33권읽기’ 후원 프로젝트의 결실입니다.

사회교정사목위는 서울 남부교도소 수용자들 중 자발적으로 독서운동에 참여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선정도서(매월 각 2~3권)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사회교정사목위가 펼치고 있는 다양한 교화사업의 한 부분으로 ‘신심서적33권읽기’를 선택, 매월 선정도서들을 지원합니다. 

첫 참가자는 총 15명이었습니다. 수용생활 특성상 함께 모여 독서모임 등을 진행하지는 못하지만, 사회교정사목위의 배려로 ‘신심서적’들을 읽을 기회가 주어진 것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이들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수용자들이 10~11월에 책을 읽고 보내온 독후감 사례 일부를 소개합니다. 

「눈물샘」 읽고 장기기증한 한명식씨

한명식(가명·마카리노)씨는 ‘신심서적33권읽기’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성경필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선정도서 중 「눈물샘」을 꼬박 일주일 동안 붙잡고 있었다. 평소 가톨릭신문을 구독하며 ‘신심서적33권읽기’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그즈음 회사가 부도나며 여러 가지 책임을 맡고 있던 한 씨도 실형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사회교정사목위가 후원하는 책 읽기는 메말라가는 마음을 느끼는 그에게 달고 시원한 물 한잔을 전하는 것과 같았다고.

한 씨는 평소 책을 읽을 때는 감동받은 부분을 별도로 표시하거나 따로 메모해뒀다가 지인들에게 권해주거나 편지에 인용해 쓰는 습관이 있었다. 좋은 책이 나오면 여러 권을 사서 지인이나 이웃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큰 기쁨으로 여겼다고 한다. 교도소 수용생활을 하며 그런 기쁨을 나누긴 어렵지만, 대신 한 씨는 장기기증과 인체조직기증서에 서명을 했다. 「눈물샘」 속 라르슈 공동체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 씨가 이웃들과 나누고자 선택한 새로운 선물이다. 

「그대 마음이 말하는 길을 가라」 읽고 참회의 마음 갖게 된 손원우씨

손원우(가명)씨가 처음 펴든 신심서적은 「그대 마음이 말하는 길을 가라」였다. ‘책을 후원해주는 프로젝트에 대해 듣자마자, 교도소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소설책 등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막상 주어진 책을 보자 썩 읽을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손 씨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카인이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서 회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특히 그는 「그대 마음이 말하는 길을 가라」를 읽고 쓴 독후감을 통해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 같이 느꼈다”며 “이제 와서 나의 잘못을 모두 지울 수는 없겠지만, 피해자분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며, 작은 노력에서부터 또한 작은 감사에서부터 하느님을 찬미하며 생활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신심서적 읽으며 부르심 되새긴 문형규씨

문형규(가명·제노)씨는 유아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느낌도 없이 그저 의무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 자신의 잘못으로 수용생활을 하게 됐지만, 그 책임을 하느님께 돌리며 원망하는 시간도 꽤나 길었다고. 신심서적을 읽으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다시금 깊이 되새긴 문 씨는 “내 고통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줄곧 하느님께서는 나를 부르고 계신다”고 고백한 그는 “한 번에 다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올바로 듣기 위해서는 듣고 또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계속 되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눈물샘」 읽고 정화의 계기 마련한 정도영· 김경환씨

정도영(가명·아우구스티노)씨도 「눈물샘」을 읽고 “피정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듯 한 환희로, 갇혀있는 나도 한동안은 자유롭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심각한 만성신부전증 등을 앓으며, 몸이 망가질수록 교회와는 멀어지는 생활을 해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눈물’은 그의 마음을 정화했고, 그는 한 발 한 발 하느님을 향해 걷는 자기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었다고 한다.

김경환(가명·프란치스코)씨도 같은 책을 읽고 묵상한 후 “가난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이 어려움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참회한다”며 독후감을 써내려갔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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